밤하늘의 아름다움과 인생
제가 처음 담임 목회를 하였던 남가주 LA 근교에 있는 Thousand Oaks라는 곳은 거리에 가로등이 많지 않은 곳이었다. 미국 도시에서 가로등이 적은 지역이 안전한 지역이라는 말이 있다. 그곳에 살 때 가끔 그곳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지역인 Hidden Valley로 밤에 걸으러 갔다. 그곳에는 저택과 부자들이 말을 키우는 목장들이 있다. 차를 목장 한가운데 세워놓고 목장을 따라있는 오솔길을 아내와 함께 걸었다. 인적이 거의 없고 가로등도 없다. 그러기 때문에 오직 밤하늘의 별빛과 달빛을 친구삼아 풀벌레 노랫소리를 들으며 걸으면서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밝은 한낮에 보는 자연도 아름답지만 깜깜한 밤하늘을 보는 아름다움도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에머슨은 “충분히 어두워져야만 인간은 별을 볼 수 있다.”라고 하였다. 인생에서 깜깜한 밤과 같은 고난의 시간 중에서도 역설적으로 별처럼 빛나는 아름다움과 행복이 있다. 인간은 고난을 통해서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저녁노을이 지면서 빛과 어둠이 교차할 때가 마음에 고독과 외로움이 찾아온다. 그러나 모든 빛이 사라지고 깜깜한 밤이 오면 왠지 모르는 고요한 평안을 느낄 수 있다. 인생에 진정한 자아 성찰과 참된 평안은 사방을 볼 수 있는 대낮보다 어쩌면 깜깜한 밤에 하늘에서 비쳐오는 별빛을 보면서 경험할 수가 있다. 이것이 인생의 신비함이다.
에디슨이 발명한 전기로 수많은 종류의 조명들을 가지고 밤하늘을 수놓아도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과 달빛이 주는 아름다움과 감동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밤하늘의 별빛과 달빛을 보려고 한다면 주위의 모든 조명을 꺼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이 비추어 주는 생명의 빛을 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붙잡고 의지하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히스기야 왕이 죽을병이 걸렸을 때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의 얼굴을 벽으로 향하였다. 이는 오직 하나님과 일대일의 만남을 통한 담판을 의미한다. 벽을 향하여 얼굴을 향하고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릴 때 하늘로부터 빛이 그에게 비치었다. 그에게 죽음에서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었다.
도시에 살면서 가로등, 자동차 헤드라이트 등으로 우리는 밤하늘의 아름다운 별빛과 달빛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언제인지 모른다. 교회를 오래 다녔지만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진리의 빛이 내 마음속에 비추인 적이 언제인가? 깜깜한 밤하늘이 아름다운 것은 별빛과 달빛이 있기 때문이다. 혼탁한 세상에서 여전히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은 하늘의 빛이 이 땅을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의 빛이 내 마음에 비추일 때에 비로소 인생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가 있다. 이 빛은 고독과 외로움 그리고 고난이라는 어둠을 뚫고 우리에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