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처럼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수많은 단어 중에서 누구에게나 엄숙하게
다가오는 단어입니다. 소설 중에도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제목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지막
잎새’ ‘마지막 수업’ ‘마지막 연주’... 인생의 수없는 매듭의 순간인 마지막을 알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인생의 많은 순간들에서 마지막을 모르고 살다가 마지막이 순식간에 다가오면
당황하게 되고 후회를 하게 됩니다. 미래는 오직 생명과 시간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있습니다. 단지 오늘 이 순간을 마지막처럼 엄숙하게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수가 있다면 인생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겠습니까? 지금 드리는 예배가 내 생애에 마지막 예배라고 생각하면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생각과 자세가 확연히 다를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내 옆에 앉아 있는 사랑하는 사람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과 그동안 하지 못했던 잘못에 대한 용서, 사랑과 감사의 고백을 할 것입니다.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면 후회와 아쉬움이 남습니다. 목사로서 주께서
맡겨주신 교회와 성도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함과 목사로서 지혜와 능력이 부족하였던 것에 부끄러움과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그럼에도 부족한 종을 지금까지 목회자로 사용하여 주신 하나님의 긍휼하신 은혜에 감사의 찬양을 드릴 수밖에 없는
사랑에 빚진 자입니다.
학창시절에 읽었던 프랑스 작가 알퐁소 도테의 ‘마지막 수업’이 생각납니다. 프랑스
알자스 지방에 살던 소년 프란츠는 공부보다는 놀기를 더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그 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교에 갔으나 교실에는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습니다. 또한 동네의 어른들이 교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프랑스어 선생님인 아멜 선생님은 이전과 다르게 정장을 입고 교단에 서있었습니다. 아멜 선생님은 "베를린에서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독일에 귀속된 엘자스-로트링겐 지방의 모든 학교에서는 프랑스어로
수업을 할 수 없고 앞으로 독일어로 수업을 하라고 합니다." 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오늘 수업이 프랑스어로 하는 마지막
수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프란츠는 그동안 자신의 모국어인 프랑스어를 배우는데 소홀히 하였던
자신을 깊이 반성을 하였습니다. 후회하고 있는 프란츠에게 아멜 선생님은 "너는 이미 네 마음속으로 너를 반성하고 있을 것이다. 그걸로 만족하단다."라며 프란츠를 위로합니다. 마지막 수업이 끝나는 시간인 12시에 마을의 교회종탑에서 12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습니다. 독일군의 군화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멜 선생님은 칠판에 ‘Viva La France!’(프랑스
만세!)라는 글을 쓰면서 마지막수업이 끝났습니다. 소년 프란츠처럼
저도 오늘 이 순간 지난날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와 함께 저의 지혜와 사랑의 부족함에 대한 반성과 회개를 합니다. 헨리 나우웬 신부께서 “저한테서 상처를 입었던 모든 사람에게 말해 주십시오. 부디
나를 용서해 달라고, 그리고 나에게 상처를 입혔던 모든 사람들에게 말해 주십시오. 내가 그들을 용서한다고...”라는 말이 제가 만나고 알았던 모든 사람에 마지막에 하고 싶은 말입니다. 언제나 마지막 처럼 오늘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